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
나 자신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자기 긍정]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이고, 그다음 30년은 그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쇼펜하우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분류를 응용하여, 운명의 차이를 만드는 세가지를 ‘인격, 소유, 평판’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인간을 이루는 것으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인격’이다.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성격, 지능 그리고 교양이 포함된다. 인격은 인간이 원래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것으로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인격은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을 말한다. 따라서 재산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인격적인 장점이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참된 원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우리의 인격은 재산이나 명예와 달리 운명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함부로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재산과 명예가 운에 따라 훼손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반면, 인격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의 인격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 지위나 부로 대신할 수 없는 장점은 본래 인간 자신을 이루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도 따라 다니는 것, 아무도 주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남의 시선에 비친 모습(평판)이나 소유할 수 있는 재산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격이 관점을 결정하고 관점이 세계를 결정한다
인격은 재산처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평판처럼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죽을 때까지 따라다녀서 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이다. 취득하거나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원래 갖고 있던 것이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하다. 바깥의 것은 운명에 의해 바뀔 수 있지만 우리의 인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격의 차이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도 행복감과 불행감은 차이가 난다. 외부의 것은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사람의 생각이 다르면 느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세계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개의 절반으로 이뤄져 있다. 객관적인 면이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주관적인 면이 아둔하고 나쁘면 불행해 보인다. 아무리 멋진 경치라고 해도 질이 나쁜 카메라로 찍으면 예쁜 풍경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인다. 각자 살아가는 세계는 무엇보다 그의 세계관에 의해 좌우되므로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 관점이 빈약하면 세계는 진부하거나 하찮은 것이 되기도 하고, 관점이 풍부하면 세계는 재미있거나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같은 사건이라도 뛰어난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일이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는 진부한 장면에 불과하다. 행복은 지위와 부의 차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행복한 감정이 일어나는 곳은 내면의 의식이다. 우리의 행복이 우리를 이루는 것, 즉 우리의 인격에 얼마나 좌우되는지 분명해 진다.
내가 깨달은 것만큼이 나의 세계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한도는 각자의 개성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 특히 정신력의 한계에 따라 고상한 향유를 누릴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 그 능력이 최종적으로 정해진다. 쇼펜하우어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정신적인 즐거움이다. 정신력이 부족하면 외부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평범한 행복을 느끼며 동물적인 쾌락, 저급한 사교나 유흥에 빠져들고, 높은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저술 같은 활동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다시 강조하며, 행복의 참된 조건은 객관적인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주관적인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 개인의 행복은 지위나 재산과 같은 ‘외적인 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여 의미를 구성하는 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느냐, 비관적으로 보느냐는 그 사람의 관점, 정신력에 비례하는 것이다.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통해 이런 관점을 풍성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40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공통의 주제다. 10대, 20대, 30대를 거쳐 40대가 되어 인생에 대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것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 덧붙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40대를 인생의 큰 분기점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40대 이후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에 대해 나름의 색깔을 더하는 해석의 과정이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알려져서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우울한 삶을 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을 알고 다채로운 삶을 누렸다.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인생을 멀리서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졌다. 그 당시 뜬구름 잡는 듯한 추상적인 이야기로 돈을 벌던 강단 철학자를 비판한, 늘 현실의 고통과 기쁨에 밝았던 철학자였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 갖추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명하게 품격을 쌓고 교양 있게 나이가 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경험한다고 저절로 깨달음을 얻지는 못한다. 100년을 산다고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이는 ‘무상’하다고 한탄하지만 어떤 이는 ‘소풍’처럼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도 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이 그 삶의 전부다.
우리가 세상의 고통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서도 늘 당당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빼앗아 가는 것은 운명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다.
운명은 나아질 수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