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7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라
[개성]
“우리는 의지의 객관성이 높은 단계에서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은 개성이 개인적 성격의 커다란 상이함으로서, 완벽한 인격으로서 외부적으로 표현된다.”
40대는 가장 열심히 활동할 인생의 전성기다. 그런데 사회적인 기준에 맞춰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워크홀릭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마흔이면 일과 행복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회의와 절망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사회 집단과 관계에 맞춰 사는 것이 익숙한 40대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세대다. 남의 시선에 갇혀 살면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의 평가에는 시샘, 질투 등 부정적인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타인의 평가의 틀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때 떠올려 보라.
“너라고 나보다 나을 게 없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생명처럼 살려는 의지에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이 세계에서 개성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능동적인 존재다. 각자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존재인 셈이다. 남이 시키는 것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가는 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행복의 길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일은 자신만의 욕망을 아는 것이다.
원하는 바를 알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왜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야 행복할까?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를 네 단계로 구분해 인간과 다른 존재를 비교한다.
첫 번째 단계, 돌 같은 무기물.
중력, 전기, 자력이 작용한다. 전기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는 회사나 집이나 220볼트로 어디나 똑같다.
두 번째 단계, 식물.
매년 새롭게 꽃이 피는 것 같지만 특성상 비슷비슷하다.
세 번째 단계, 동물.
충동과 본능이 지배하면서 무리 짓는 특성이 강하다. 다른 말로는 집단주의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 인간.
비로소 각자의 개성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고 그것에 대한 성취감과 행복감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삶을 살 때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낮은 단계일수록 공통점(종적 특성)이 강하고 높은 단계일 수록 차이점(개별적 특성)이 더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서 인간만이 자신의 색깔을 찾는 삶을 살 수 있다.
지식이 발전하면서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하늘의 별과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에서 작용하는 ‘내적인 힘’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에너지 같은 물질에서는 화학 작용과 전기 작용을 일으키지만 생명안에서는 영원히 살려는 강한 집착이 일어난다. 물론 영원한 삶은 유한한 인간에게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보다 낮은 고등 동물은 개성을 갖고 있지만 인간만큼 뚜렷하지 않다. 종의 성격이 너무 강하여 개별적 성격의 특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등 동물로 내려갈수록 개별적인 흔적이 사라지고 종의 일반적인 성격과 그 특징만이 남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생존 능력을 영혼이라 부르고, j 식물적 영혼(양분 섭취), k 동물적 영혼(느낌), 그리고 l 인간적 영혼(사유) 세가지로 나눴다. 니체도 인간의 진화를 다섯 단계 j 식물(유령), k 벌레, l 동물(원숭이), m인간, n 초인으로 나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여러 것이 혼재한다는 뜻이다. 인간 안에는 이런 여러 충동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식물처럼 수면과 영양 섭취뿐만 아니라 동물의 종족보존의 충동이 들어 있으며, 높은 지성이 함께 작용한다. 잠을 잘 때는 돌이나 식물처럼 지내고, 낮에 음식 섭취나 종족 보존을 위해 동물처럼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가끔 지성을 활용한다. 이는 동물에서 인간까지 오랜 진화를 거듭했다 해도 자칫 한순간에 원숭이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이를 막기 위해 인간 안에서는 가장 낮은 어두운 충동인 의지와 가장 높은 밝은 지성이 대립하는데, 이 둘은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지혜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런 지성을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바를 알게 되며, 자신의 참모습인 ‘개성’이 실현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개성’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라
한국의 행복 지수는 OECD 38개국 중 36위로 최하위권이다. 세계 최하위권을 맴도는 불행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빈부 격차, 치열한 경쟁, 급속한 고령화, 열악한 환경, 물질 만능 주의, 외모지상 주의가 행복을 방해한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살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144위로 최하위라는 점이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 또는 다시 태어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꼽으라고 하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죽음을 앞둔 말기암 환자들의 첫 번째 소망이라고 브로니 웨어가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에서 말한다.
누군가가 행복한지 보려면 얼마의 자산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고통을 잘 견뎌 냈는지 봐야한다. 노년에 가장 후회되는 일,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과거에 내가 원했던 것을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주위 눈치를 보며 남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삶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살기 어렵고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집단주의, 평준화된 교육 방식, 출세 지향주의 등에 원인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몇 가지 대상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행복도를 낮추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적 비교가 심한 편이며 그것에 따라 행복도가 낮아지는 경험은 노인 층이 가장 많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할수 있는 것, 내가 타고난 것을 긍정하는 것이 나대로 사는 것이다.
한국인이 꼽는 행복의 조건은 가족의 행복, 건강, 그다음이 부와 명예다. 다행스럽게도 경제적인 조건은 어느 정도 선진국 수준이라 물질적인 결핍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계급을 나누며 남의 태생적 운을 부러워하는 일들이 생겨나 불행감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생겨나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행복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다. 플라톤은 <<행복론>>에서 재산, 외모, 명예, 체력, 언변에서 조금은 “부족함을 느끼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보다 자신의 주관적인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보다 다소 부족하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요즘 잘생긴 사람보다 개성 있는 사람이 더 인기 있다. ‘너는 인상이 좋다’, ‘웃을 때 예쁘다’, ‘카리스마 있어 보이다’, ‘걸 크러쉬’, ‘차도남’ 등이 개성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의 고유한 색깔이 꽃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잠재적인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마흔부터는 개성이 뚜렷한 삶을 살아야 된다. 남의 기대와 욕망에 맞춰 살아선 안 된다. ‘삶을 위한 삶’이라는 생존을 위해 자아 실현이라는 가장 높은 욕구가 잊혀지면 안 된다. 겉보기에 사람들은 같은 지향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곳을 보고 싶어 한다. 동일화되고 표준화된 대중 문화의 영향력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같은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행복은 기만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은 독일 헌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독일어 ‘인격의 자유로운 전개(die freie Entfaltung der PersÖnlichkeit)’를 번역한 것이다. 일본이 독일의 헌법을 받아들이면서 변형된 용어다. 국가는 국민에게 행복의 가치를 위해 어떤 것도 강요할 수도 없다. 놀든 일하든 각자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다가 실직을 선택해서 행복을 느껴도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국가는 노동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지원할 수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 추구권은 개성의 다양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똑같은 영원 불멸한 행복을 전제하지 않는다.
행복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가령 인터넷의 인격 침해, 비방과 모욕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할 권리가 행복 추구권에 덧붙는다. 행복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확장된다. 행복의 내용은 각자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개성이다.
세상에는 늘 잘 알려진 유혹의 길이 있다. 성공, 행복, 명예, 부 등 행복으로 이끌 것으로 확신하는 통로다.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쫓는다면 적성도 맞지 않고 강요된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남을 따라서 ‘같음’을 추구하는 것은 낮은 단계의 욕망이다.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높은 단계의 욕망이다.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 맞춰 살면 갑갑하고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비록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않고 자기 자신에 흡족한 삶이면 충분하다.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방법은 나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다. 개성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태도다. 우선 남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바, 나 자신만이 원하는 바,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타고난 재능과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마흔이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와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충분해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만 찾아보라.
원하는 바가 없는 인생은 타인에게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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